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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우리의 삶은 참을 수 있을만큼 무거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우리의 삶은 참을 수 있을만큼 무거운가






1. 인생담론, 연애담의 탈을 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이게 어디 연애소설의 제목으로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이 책은 분명 연애소설이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표피는 연애소설의 등장인물과 사건, 형식을 잘 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형식의 껍데기를 벗겨보면 그 안에는 인생에 대한 치열한 철학적, 존재론적 담론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들이 모두 한번씩은 겪게되는, 그러나 한번 이상은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이 대전제에 의해 우리의 인생은 수 많은 실수와 잘못된 선택으로 점철된다. 만약 인생이, 그리고 역사가 무한이 반복될 수 있다면, 우리는 수 많은 선택 중에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무한한 윤회 속에서 삶을 무겁게 짊어지고 갈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무거운 삶의 주제를, 저자는 4명의 중요한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삶의 흐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와 테레사, 사비나와 프란츠는 각각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꿈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며, 때로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가벼움과 무거움 중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그저 주인공들의 삶을 담담히 뒤쫓으면서 묘사할 뿐이다. 



2. 인간 심리에 대한 적나라한 해부학


철학적 깊이만으로 문학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루기는 어렵다. 

이 책이 소설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 그 안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철학적 깊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에 빠진 인간의 심리를 매우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문체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연애소설, 아니 그냥 일반적인 소설에서 보여주는 심리묘사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때로 작자가 화자로써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주인공인 남녀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그 심리가 단순한 1차원적인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날카로운 메스로 심리를 조각조각 내놓은 듯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테레사와 사랑에 빠지는 토마스의 경우에는 동정어린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믿게 되고, (이 과정은 일종의 자기 기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끊임없이 후회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완성된 형태의 사랑을 이루어낸다. (적어도 토마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보통 연애소설에서 다루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절대적이고 심지어 신성불가침한 그 무엇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러한 작가의 '사랑의 정의'에 대해 공감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정확하게는 우리가 기억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추억의 일부분으로 미화된 감정일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사랑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그런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그런 존재다. 


그러나, 한참 사랑에 빠져있던 자신의 속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행복의 감정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는 '이것이 진정 사랑인가'라는 의문과 후회, 의심이 끝없이 일어나고, 상대방에 대한 불만족과 자기 자신에 대한 비애게 뒤섞여있는 복잡하고 예민한 상태이기 쉽다.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혹은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이 복잡미묘한 사랑의 심리상태를 작가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치밀하게 분해하고 설명한다. 이 책은 그래서 연애소설이라기보다 연애하는 사람에 대한 연구, 해부학이라 할만하다. 



3. 영원회귀의 딜레마


책의 첫문장은 영원회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의 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떨까. 무한이라는 원심력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불필요하게 무거운 것들은 다 날아가버리고, 한 없이 가벼운 존재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가벼운 것들은 깃털이나 구름처럼 날아가버리고, 오직 무거운 것만 그 중심에 남을 것인가. 


그러나, 영원회귀에 관한 철학적 물음은 그저 물음일 뿐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삶이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영원회귀에 대한 가능성을 저자는 마지막 장인 '카레닌의 미소'에서 얼핏 보여줄 뿐이다.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 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반복되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카레닌(토마스와 테레사가 키우는 개의 이름)이야말로 유일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카레닌의 시간이 무한회귀를 상장한다고 했을 때, 아마도 무한회귀 속에서 살아남는 가치는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일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에도 '가벼움'이 들어간 것이리라. 그러나, 그런 '가벼움'이 완벽한 삶의 가치인가. 라는 물음에는 역시나 고개를 가로 저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삶의 본질은 '가벼움'이겠지만, 우린 그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벼움'이라는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무언가 '무거운'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해가는 존재가 아닐까. 무한회귀할 수 없는 한번뿐인 삶이, 우리 모두를 이런 어리석음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