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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책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 밀란 쿤데라


12p

이것이 문제이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 


14p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하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4p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 토마스는 독일 속담을 되뇌였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18p

그 당시 토마스는 메타포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메타포를 가지고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메타포가 하나만 있어도 생겨날 수 있다. 


40p 

그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중압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수천 톤이나 나가는 소련 탱크의 무게도 이 중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다른 사람을 위해, 타인을 대신하여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 치면서 깊어진, 타인에 대한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70p

그녀는 사랑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곧 다가올 밤이 무섭고 그러한 꿈들이 두려왔다. 그녀의 삶은 둘로 갈라져 있었다. 밤과 낮이 서로 그녀를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었다. 


97p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마치 포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내던져야 하는 군인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방기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그는 언제 공격을 당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프란츠의 사랑이란 언제 공격이 올지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133p

사비나에게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게 되며, 우리가 하는 것의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202p

중앙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철저하게 범죄자들의 창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진리를 어둠 속에 은폐하고 있다 :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287p

어떻게 이 상원의원은 어린아이들이 행복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그는 그들의 영혼을 읽었을까? 만약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들 중 세 명이 네번째 아이에게 달려들어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면?

상원의원이 자신이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논거는 하나밖에 없다: 그의 감수성. 가슴이 말할 때 이성이 반박의 목청을 높이는 것은 예의에서 벗어난 짓이다. 키치의 왕국에서는 가슴이 독재를 행사한다. 


291p

전체주의적인 키치왕국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제당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경쟁자는 질문하는 사람인 셈이다. 질문이란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무대장치의 화폭을 찢는 칼과 같은 것이다. 사비나가 테레사에게 자기 그림의 의미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앞에는 이해가 가능한 거짓말이고 그 뒤로 가야 이해가 불가능한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324p

창세기 첫머리에 신은 인간을 창조하여 새와 물고기와 짐승을 다스리게 했다고 씌어 있다. 물론 창세기는 말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신이 정말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길 바랐는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인간이 암소와 말로부터 탈취한 권력을 신성화하기 위해 신을 발명했다라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다. 


340p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다, 라고 테레사는 생각한다. 


357p

임무라니, 테레사,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358p

안개 속을 헤치고 두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이란 우리는 마지막 역에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