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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책속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7p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인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11p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17p

사랑 내부의 관점에서는 삶의 우연적 성격을 목적성이라는 베일 뒤에 감춘다. 


26p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30p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33p

욕망 때문에 나는 실마리들을 악착같이 쫓는 사냥꾼이 되었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되었다. 


36p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큰 말이 주는 위압감은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임으로써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37p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는 모호한 신호들과 마주쳤을 때, 이런 분명한 태도의 결여를 수줍음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 더 좋은 설명이 어디 있겠는가 - 사랑하는 사람도 바라기는 하지만, 너무 수줍어서 그렇다고 말을 못 한다. 이렇게 자신의 유혹의 대상이 수줍어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39p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41p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다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43p

그런 서툰 질문들 [그래도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 하나하나를 통하여 나는 그녀를 좀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배후에는 가장 직접적인 질문으로 다가가려는 초초한 시도가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그리고 그것과 연결되는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 


48p

나는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곧 나의 모든 개인적 특징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무가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5p

침실의 철학자는 나이트클럽의 철학자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존재이다. 그 두 영역에서는 육체가 두드러지고 또 그만큼 상처받기도 쉽기 때문에, 정신은 말없이, 개입 없이 판단을 내리는 도구가 된다. 생각이 배신행위가 되는 것은 그것이 프라이버시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63p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 받는 느낌이 든다. 


67p

어쩌면 어떤 사랑은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한느 충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79p

사랑하는 여자를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머릿속에서 작곡한 놀라운 심포니를 나중에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리로 들었을 때의 느낌과 같다. 우리의 생각 가운데 많은 부분이 연주를 통해서 확인되는 것에 감명을 받기는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연주되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다. 


89p

왜 보통 친구들에게 하듯이 예의바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유일한 변명은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 그녀는 내 이상형이라는 것 - 구두만 빼면 -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통 친구에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친구가 내 이상형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거론할 가치도 없을 정도이니 우정의 경우에는 이상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 사고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말을 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변명이었다. 


90p

부모와 정치가들이 메스를 꺼내들기 전에 하는 낡은 말이 있을 뿐이다. -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네 속을 뒤집어놓는다. 나는 네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너에게 영광을 주었으니 이제 너에게 상처도 주겠다. 


97p

유머가 있으면 직접적으로 대립할 필요가 없었다. 자극물 위를 미끄러져 넘어갈 수 있었고, 그것을 비스듬하게 바라보며 눈을 찡긋할 수 있었고, 실제로 말을 하지 않고도 비판을 할 수 있었다. 


103p

가장 흥미로운 얼굴은 대개 매력과 비뚤어짐 사이에서 동요한다. 완벽함에는 어떤 압제가 있다. 심지어 어떤 싫증이 느껴진다. 과학적 공식과 같은 도그마의 힘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있다. 이보다 유혹적인 아름다움의 경우에는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각도조차 얼마 되지 않는다. 어떤 빛에서나, 어느 때에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미(美)는 아슬아슬하게 추(醜)를 희롱한다. 자기 자신에게 모험을 건다. 비율의 수학적 규칙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않고 모험에 나서서, 추로 미끄러질 수도 있는 바로 그 세밀한 곳들에서 매력을 발산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여자는 남자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120p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이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관자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지겹다. 


128p

생존의 문제가 이닐 때에는 의심도 쉽다. 우리는 여유가 있는 만큼만 회의적일 수 있으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우리를 지탱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회의를 품는 것이 무척 쉽다. 탁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되면 그것은 지옥이다. 


130p

연인들은 의심하고 캐물으려는 철학적 충동에 대립되는, 믿고 신앙을 가지려는 종교적 충동에 굴복한다. 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143p

어쩌면 우리가 존대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146p

다른 사람들과 누리는 행복은 두 가지 종류의 과잉에 의해 제한이 되는 것 같다. 하나는 질식이고 또 하나는 외로움이다. 


174p

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190p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201p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는 [또 훨씬 덜 즐거운] 질문이다. 두 경우 모두 우리는 연애의 구조에서 우리가 의식적인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우리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선물로서 주어졌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211p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240p

인간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그 바람에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250p

나는 고통을 겪는다. 고로 나는 특별하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크게 이해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이 틀림없다. 


257p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 내 사랑 이야기는 얼음 덩어리와 같아서, 현재로 들고 오는 동안 차차 녹아버렸다. 


269p

그러나 문제를 파악하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지혜와 지혜로운 인생은 크게 다르다. 우리는 모두 능력 이상으로 똑똑하다. 그러나 사랑이 미친 짓임을 안다고 해서 그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