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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책속에서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 김화영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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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내 반생의 행로를 따라 곳곳에 수많은 방들이 문을 연다. (중략) 잠시 머물기도 했고 가재도구르 장만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머물기도 했다. 이런 수많은 낯선 방, 낯익은 방들을 이어주는 삶의 흐름, 그것이 내게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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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게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은 기분전환, 아름다운 풍경, 휴식, 그리고 견문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여행은 내게 삶 그 자체다. 대단한 여행가여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남보다 훨씬 더 많은 이사를 다녀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어디를 가나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구경하는 일보다 삶이 더 중요했다. 남들의 기이한 삶, 뜻있는 삶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이상으로 "지금 여기서 나는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는 것이 필요했다. (중략) 왜냐하면 그 삶이 있어야 비로소 남의 삶, 남의 풍경이 내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여행은 나의 삶이 남의 삶이나 공간을 만나는 감촉이며 공명(共鳴)이다. 


7p

나도 변했다. 단순히 나이를 더 먹었다는 사실 이외에도 많은 관계와 의미의 변화를 이끌고 나는 그곳에 와 있는 것이다. 그 변화와 공간의 접촉, 즉 내게 구체적인 삶의 살과 그 변화를 만지고 있다는 실감, 그것이 여행이다. 


8p

길을 걸어갈 때면 종종 상상해본다. 매 순간 내 몸이 허공 속에서 꼭 그 용적만큼만 차지했다가 다음 순간 또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순간적으로 비워놓은 내 몸의 용적만큼의 허공과 그 허공의 연속인 터널을 상상해본다. 여행은 그 터널 속에서 내 심신과 내 열망,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을 가득가득 채우면서 흐르는 일이다. 이렇게 흐르며 세상과 사람을 바라볼 때 어여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며 또한 그 어여쁜 뒷모습 애틋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무엇보다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이 땅 위에 살아서 저것들을 바라본 이는 행복하여라(Heureux celui des vivants qui a vu ces choses)."


22p

성은 현실의 땅 위에 건축된 집이지만 이미 그 첨탑이나 탑실(塔室)은 어느 정도 꿈의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단순히 거대한 집이라 해서, 육중한 돌로 지은 집이라 해서, 모두가 성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은 공간적인 넓이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깊이로 지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23p

성의 어느 한쪽에는 반드시 무너진 벽과 허물어진 폐허가 있는 법이다. 이리하여 성은 한쪽 발을 공간 속에, 다른 한쪽 발을 시간 속에 딛고 서 있다. 


29p

그러나 참다운 성은 모래성을 무너뜨리던 그 시간(時間)의 파도로 짓는 것이다. 


42p

그러나 시 속에서도 그러하듯이 이곳의 죽음은 공포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죽음은 다만 형언할 길 없는 슬픔과 아름다움과 신기한 휴식의 안개 속에 싸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득한 침묵. 


54p

누가 그랬던가 '영원한 사랑'이라고? 영원한 것은 오직 돌과 청동과 푸른 하늘뿐이다. 저 이끼 낀 돌 속에 사랑의 혼이 서려 있을까? 그렇지 않다. 흘러가버리는 것, 먼지가 되어버리는 살, 무너져버리는 사랑의 철저한 무(無) - 해묵은 돌들이 증언하는 것은 그런 것뿐이다. 


92p

우리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에도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서 있을 성은 이리하여 우리를 참으로 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들의 위대함은 요지부동의 성으로 쌓아올려진 절망의 무게, 바로 그것이 아닐까?


221p

영문도 모른 채 가슴이 뛴다. 여행의 첫날 저녁은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신비스럽고 모든 것이 은밀히 부르는 손짓 같고 유혹 같아 마음이 달뜬다. 여행지(旅行地)의 첫날 저녁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된다. 모름지기 이렇게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하러 그 먼 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223p

여행의 첫날 저녁에는 모두가 잠시 예술가이며 백만장자다. 그리고 여행의 참맛은 판에 박힌 격식과 분류방식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거칠 것 없는 자유 그것이 아니던가. 


337p

'느릿느릿'이라는 부사의 진정한 속도를 이해하자면 코리끼 등에 타보아야 한다. 느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확실한 걸음 걸음이다. 


350p

궁궐과 궁궐 밖의 깊이를 모를 인간의 비참. 그 모든 것을 무한한 시간의 척도 위에 놓고, 건듯 불고 지나가는 바람같이 우리의 짧은 일생을 바라보게 하는 저 무한한 거리감. 돌연 나는 집착으로부터 떠난다. 가난도 정답고 부서진 가옥의 문도, 자이푸르에 내리는 황혼도, 문득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하게 만드는 느낌의 울림도 정답다. 


335p

인도가 왠지 상상의 나라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마도 그 광대한 고장의 '영원'이 매일매일의 이 '덧없음' 속에서 물이 새듯이 새어나오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걸 단순히 종교라는 말로 표현해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도에는 종교 이상의 어떤 걷잡을 수 없는 황량함이 있다. 인도에는 그곳 풍경의 압권이라는 이 황량함이 현실과 허무 사이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가없는 공간에 우리의 몸이 떠돌고 있음을 매순간 느낀다. 


375p

중국에 일 주일 동안 가본 사람은 한 권의 책을 쓴다. 한 달 동안 가본 사람은 글을 한 편 쓴다. 일 년 동안 가본 사람은 중국에 대해 남이 물어보아야 겨우 대답한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중국에 살다 온 사람은 그저 미소짓기만 한다. 


392p

그러나 역시 다른 그 무엇을 통해서도 맛보지 못할 고독을 혼자 떠나는 여행은 비밀처럼 마련해두고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고독은 다름아닌 자신과의 대면이다. 우리는 깊은 사색이나 수련을 거치지 않고도 돌연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옮겨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그저 손쉬운 버스를 타고 그저 대단할 것 없는 어느 중도시에 당도하기만 해도 우리는 돌연 잊었던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이 대면은 벌거벗은 삶과의 만남이다. 


395p

어쩌면 여행의 진정한 맛은 이별 연습에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머무름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풍경도 지나가고 사람도 지나간다. 여행을 통하여 우리들은 이별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