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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더 테러 라이브> - 부조리와 테러, 긴장의 끈을 잡아당기다

<더 테러 라이브> - 부조리와 테러, 긴장의 끈을 잡아당기다 





실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최근 한국영화의 열풍 속에서 폭탄테러라는 흔치않은 소재를 가지고 등장한 <더 테러 라이브>의 감상기.



1. 부조리 :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는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 앉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마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 많은 부조리들에 대한 외침처럼 들리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줄기는 폭탄 테러지만, 영화의 진행에 가속도를 붙이는 방아쇠는 크고 작은 부조리들이다. 주인공인 앵커 윤영화(하정우)는 밀려난 자신의 위치, 이혼한 전처와의 재결합, 그리고 개인적인 명성 등 수 많은 것들을 다시 되찾을 기회를 잡기 위해 테러 상황을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자신이 독점 생중계하기로 한다. 


이 작은 부조리가 (물론 신고의 의무를 위반한 건 작다고만 할 수 없지만) 도화선이 되어서 영화는 파멸적 결말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성공(이자 자신의 위치 회복)을 위해 시작된 테러범과의 생중계쇼는 국장(이경영)이 등장하면서 더 큰 부조리로 이어지고, 평범했던 라디오 스튜디오는 미디어와 정치적 욕망이 뒤엉킬 용광로처럼 끓어오른다. 


영화는 초반부터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미디어의 외면이 아니라, 방송이 나가지 않는 동안 그 안에 있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잡아내고 있다. 그 안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겉으로 보이는 공정하고 반듯한 모습들이 아니라 비열한 욕망들로 가득하다. 이 부분이 영화 초반에 관객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흥미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히, 테러범과 대화를 통해 테러범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이었던 윤영화(하정우)는 자기 자신이 테러범의 피해자가 되는 시점부터 (그 피해는 물리적인 피해(폭탄)와 심리적 피해(욕설이 대중에 공개)도 포함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한강 위의 인질들과 같은 입장이 된다. 그러나, 윤영화가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칠때마다, 자신의 과거 부조리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 이것은 폭탄의 존재만큼이나 주인공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장치역할을 하고 있다. 



2. 테러 : 세상을 향한 폭력적 외침


영화의 중심이 되는 폭탄의 존재는 단순히 무차별 살상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살상을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테러범이 대중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처음 다리를 폭파시켰을 때, 인명피해를 최소화한 것도 그러한 의도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테러범이 '더록'의 하멜장군처럼 인명 살상에 회의를 느끼는 캐릭터도 아니다. 동정심이 불러일어켜질 만한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필요를 위해서라면 폭탄을 이용해 특정 인물을 살상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테러범이 인간을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살인귀도 아니다. (애초에 테러의 동기 자체가 억울한 죽음이었다) 결국 테러범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테러는 시간에 따라 진행이 되고, 결국 무고한 목숨들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테러는 파멸적 결말에 다다르게 되고, 부조리로 인해 파괴된 주인공과 테러로 인해 종말을 맞게된 테러범이 만나게 된다. 


물론 테러범이 어떻게 그런 대규모의 폭탄을 손에 넣었으며, 경찰과 사법기관의 추적을 비웃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됐느냐는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그정도는 영화적 장치로 이해되는 수준이다. 



3. 근데 좀 느슨하다


다만 좀 아쉬웠던 부분은 있다. 

초반에 눈길을 사로잡았던, 매스미디어의 부조리한 뒷면은 테러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동반 상승하는듯 하더니, 너무도 손쉽게 사그러지고 만다. 폭탄에 의해 조종되는 주인공의 진퇴양난의 처지도, 테러범의 협박과는 달리 너무나 쉽게 외부로 알려지게 되고, 그에 따라 긴장감이 떨어져 버린다. 


테러범이 상당히 지능범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끝까지 잡히지 않는다'라는 목적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테러범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우선시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좋은 머리로 추적을 따돌리기보다 자기 발로 잡히려 오는 형국을 보여준다. 


반면에 주인공은 초반 자신만만했던 모습에서 테러범에 의해 위축되고, 다시 대중 여론에 의해 매장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리고 개인적인 슬픔까지) 마지막 선택에 개연성을 더하기엔 처절함이랄까. 공감하기 힘든 과정을 통해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는 스튜디오라는 공간 (폭탄에 의해 한정된 공간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공간) 의 이중성과 인간의 이중성 (올바른 이미지의 앵커이면서 부도적한 인간), 미디어의 이중성 (카메라가 돌아갈 때와 멈췄을 때의 상황) 그리고 정부로 상징되는 거대 권력의 이중성이 여러갈래로 교차되면서 상당히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 요소들의 이음새가 치밀한 편은 아니다. 물론 이정도에서 재미를 느낄 관객들은 충분히 많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완성도 높게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소모한 듯한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