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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철학으로 들여다본 사랑의 맨얼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철학으로 들여다본 사랑의 맨얼굴





1. 사랑, 그 끝없는 이야기거리 


사랑만큼, 인류의 이야기 보물창고가 또 있을까. 

그리고 그만큼 식상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돌의 노래가사에서부터 주부들이 열광하는 아침드라마까지, 문화컨텐츠의 상당수는 사랑을 주제로 하거나, 적어도 사랑이야기가 포함된 것들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세상이 사랑타령인데, 식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어쩌면 우리의 DNA 속에 사랑에 대한 갈망이 새겨져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랑이야기에 쉽게 열광한다. 그리고 더욱 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서 컨텐츠를 만드는 쪽은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처럼,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평범한 사랑이야기이다. 소소한 풍경들이 차창 밖으로 지나가지만,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여행처럼, 두 주인공의 사랑은 통속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기본적인 사랑이야기의 흐름과 구조를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랑이야기, 좀 뭔가 다르다. 



2. 솔직담백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 


보통 사랑이야기가, 사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에 촛점이 맞춰져있는 반면에, 이 책에서는 온전히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 디테일이 얼마나 섬세한지, 누군가를 사랑했던 (혹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미세한 감정까지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마치, 혼자만 보기 위해 쓴 일기장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처럼, 사랑에 빠진 내 마음 속 모습을 들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 '들여다보기'는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신변잡기처럼 보일 법도 하지만, 그 토대는 통계학으로 시작해서 다양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철학서나 심리학 서적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재치넘치는 문체와 더불어, 살아 숨쉬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묘사에 있지 않나 싶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불과 25의 나이에 썼는데,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필력을 보여준다. 부러울 만큼 놀라운 필력이다. 



3. 사랑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거나 


통상적인 사랑이 그렇듯, 소설 속 두 주인공의 사랑도 끝이 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미세한 균열에서부터 시작되어 결국 파국으로 이르는 연인의 심리는 역시나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막상 눈 앞에 이별을 앞둔 사람에게는 비장하고 지나온 사람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별의 자기합리화 과정은 눈물겹게 슬프다가도 코믹스럽게 보인다. 


사랑의 가치를 믿는 사람도,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부정적인 사람도 모두 공감할만한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아니, 그보다는 사랑이야기를 가장한 내 마음 들여다보기 일지도 모르겠다.